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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사람이라면 최송설당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영친왕의 보모였던 최송설당은 1931년 전 재산을 쏟아부어 재단법인 송설학원을 설립하고 현 김천중‧고등학교의 전신인 김천고등보통학교를 개교한 교육자이다. 최송설당을 아는 사람 중에 그녀를 존경하지 않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당시 시대상으로 봤을 때 여자의 몸으로 큰돈을 모으기도 어렵거니와 그렇게 어렵게 모은 전 재산을 교육사업에 투자하는 용단을 내린 것은 더 힘든 일이라는 걸 알기에, 작금의 시각으로 봐도 대인배인 최송설당에 대한 존경심은 당연하다.
이렇듯 모든 이에게 추앙받는 분이기에 그녀를 모티브로 픽션이 가미된 연극이나 뮤지컬을 김천에서 제작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제약과 우려가 따를 수밖에 없다. 자칫 너무 사실에만 치우쳐 인물 다큐멘터리가 되면 모객이 어려워 흥행에 실패할 수 있고, 상상력으로 픽션을 가미해 송설당의 명성에 조금이라도 누를 끼친다면 송설인은 물론 지역민들에게 뭇매 맞기 십상이다.
그런 어려움을 무릅쓰고 최송설당 여사의 주요일대기를 다룬 뮤지컬을 제작했다는 소식에 현장으로 한걸음에 달려가 봤다.
김천중학교 축제가 한창이던 지난 31일 오후 김천중 세심관에서 본격 뮤지컬에 앞선 프리뷰 형식의 공연이 진행됐다.
제작총괄 조명숙, 극작(작사)&연출 백하룡, 작곡&음악감독 박정아, 음악지도&주연 이수연/박소현, 액팅코칭 고재경 등등 연출진이 화려했다.
서울에서도 내로라하는 공연 관계자들이 다수 참여해 작품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그런데 출연진을 보니 송설당 역의 배우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출연자가 연기 초보인 김천중 학생 5명이었다.
최송설당이 김천고보를 개교한 지 100여년이 지나 그 학교의 재학생이 그녀의 생애를 다룬 뮤지컬에 참여한다는 의의는 좋았다. 하지만 연기 생초보 학생들이 수업시간을 할애해 일주일에 1번 2시간의 연습량만으론 공연준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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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푸르른 날에는’ 제작진은 “역사 속 인물의 이야기를 후대의 존경을 담아 무대 위의 현실로 만들었다. 김천중학교 학생과 뮤지컬 전문가들이 만나 창작의 세계에서 위대한 생애를 따라가 보았다. 일제강점기 육영사업의 큰 별, 우리들의 고보할매 최송설당의 생애와 고보할매가 꿈에도 그리셨던 '푸르른 날에는'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본 공연은 정식 공연이 되기 전 소박한 Preview 형식의 공연으로, 학생들이 수업시간을 쪼개 정성껏 준비했다.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린다”며 학생 참여의 의미를 전하고 따뜻한 응원을 당부했다.
다음은 7장으로 나뉜 뮤지컬 ‘푸르른 날에는’의 시놉시스다.
“1930년대 서울, 최송설당 여사의 거처인 정결재이다. 하늘은 곧 눈이 쏟아질 것만 같고 누군가를 기다리듯 마당을 서성이는 송설당. 조카인 최석태는 추운 날씨에 그런 여사가 자못 걱정스럽다. 곧 한 점 한 점 성긴 눈이 날리고 지나온 과거가 현재처럼 펼쳐진다. 아버지에게 서당공부를 배우고 어머니와 길쌈과 삯바느질을 하던 어린 시절들……. 즐겁고 고된 날들 중에서 유난히 기억 남는 아버지의 한숨 소리.
조상의 신원 회복을 평생의 원으로 생각하던 송설당의 아버지는 그 원을 못 푸는 것과 자신의 슬하에 딸만 셋인 것을 한스러워한다. 맏이였던 어린 송설당은 아버지의 원을 풀고 살아가고자 결심한다. 결혼도 포기하고 어쩌면 여자로 사내의 삶을 살기로. 어머니를 도와 삯바느질을 하고 길쌈을 하고, 그것을 종잣돈 삼아 장사를 시작한다. 여러 가지 장애를 넘고 조선에서 가장 큰 상권인 우시장을 장악해 나가고······ 그리고 때가 되자 송설당은 서울로 상경한다. 그곳에서 고종의 궁녀였다 훗날 후궁이 되는 엄상궁을 만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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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분의 공연이 끝났다.
재미있으면서 무게감이 있었다.
젊은 날의 송설당을 연기한 배우는 뮤지컬 신예 박소현으로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가 무색하게 무대 위에서 카리스마를 뿜었다. 마치 송설당의 혼령이라도 씐 듯 신들린 노래와 연기로 무대를 휘어잡았다. 다음 무대도 기대되는 뮤지컬 전문배우였다.
또 다른 송설당을 연기한 이수연 배우는 지난해 문화가있는날 월간김촌극장에서 제작한 뮤지컬 ‘굴다리연가’에서 시민오디션을 통해 주연을 따낸 늦깎이 신인배우다. 이번 무대에서 짧은 기간 안에 월등히 향상된 노래와 연기력을 보여주며 가능성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기품 있는 목소리와 연기로 최송설당의 재림을 구현하는데 한몫했다.
학생 연기자들에 대한 걱정도 기우였다.
진지한 눈빛에서 이번 뮤지컬에 임하는 그들의 태도가 느껴졌다.
코러스를 비롯해 아이, 고덕환, 소몰이꾼, 최석태, 이한기, 왜인, 스님, 행수 등 각자 1인다역을 해내면서 극의 빈틈을 메웠다.
젊은 감각을 살린 빠른 비트의 코러스는 극의 몰입감을 더했다.
중학생 관객이 집중할 수 있도록 10여 분마다 킬링포인트를 삽입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특히 뮤지컬 전반을 아우르는 노래가 너무 좋았다는 평이 대다수다.
프리뷰는 대성공, 본공연이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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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인터뷰Ⅰ>박정아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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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더뮤지컬어워즈소극장창작뮤지컬상-<사춘기〉
제4회뮤지컬페스티벌에그린어워드리메이크상-<마마돈크라이>
※ 주요 작품
2024년
<이터니티>-알앤디웍스
<클럽드바이>-제작: 스튜디오단단
2023년
<드라이플라워> -제작:네버엔딩플레이
<보이A>-제작: 스튜디오단단
2022년
〈모래시계〉-제작: 인사이트엔터테이먼트
<트레이스유: Trace U> - 제작: 스튜디오 선데이 외 다수
새로운 길을 개척한 진취적인 여성상을 그리고자 음악도 힘있게 만들었다.
사극형식에 맞게 현대음악에 전통악기의 선율을 얹었다.
우시장 씬의 경우 전통악기를 써서 사운드적 전통 소스를 가미했다.
학교 건립 추진 장면 등 주요 상황이나 장면 설정을 음악적으로 끌어내려 애썼다.
학생들의 연습 기간이 짧았던 게 아쉽지만 아이들이 뮤지컬 이야기에 흥미를 갖고 같이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
랩을 듣는 세대여서 리듬을 잘 따라온다. 학생들의 장점을 살려 중요 메시지 선율과 같이 결합했다.
관객 반응이 가장 좋았던 송설당과 행수와의 이별씬은 즉흥적으로 탄생했다.
원래 송설당의 독무대였는데 연습 당시 한 학생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걸 듣고 재능을 발견, 듀엣으로 변경했다.
학생들의 실력이 향상될 공연 참여 기회가 많아지길 바란다.
<미니인터뷰Ⅱ>박소현 송설당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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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설당이 어떤 목표를 갖고 삶을 사셨는지 따라가려 노력했고 최대한 팩트를 기반으로 인물에 대해 연구했다. 연구하면 할수록 대단한 분이라 느꼈다. 힘든 시대에서도 결단력과 소신을 가진 진취적 여성을 연기하면서 개인적으로 배운 바가 컸다.
사극형식 공연은 처음이고 학생들과 함께한 것도 처음이라 어떤 밸런스로 해야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다행이 공연을 준비하면서 연출님이 힘든 부분을 많이 도와주셨고 아이들도 잘 따라와 줬다.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칠 때 음치, 박치여서 고생도 했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웠다(웃음).
가장 힘든 점은 극이 짧아서 이분의 깊이 있는 스토리를 담은 생애를 짧은 시간 안에 다 보여드리지 못한 점이다. 장면이나 노래로 표현하지 못했던 부분을 어떻게 관객에게 전해야 할지 어려움이 있었다.
<미니인터뷰Ⅲ>이수연 송설당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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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아버지를 비롯해 오빠와 남동생, 그리고 남편이 모두 김천고 출신이다. 교가가 귀에 익숙해 외울 정도다(웃음).
막연하게 송설당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뮤지컬 연습을 하면서 좀 더 깊이있게 알게 됐다. 여자의 몸으로 학교를 건립한다는 마음을 가진 것부터 자신의 일을 뒤로하고 동향자제를 키우기 위해 애쓴 점이 감명 깊었다. 여장부의 기개를 가진 분이셨다.
연습시간이 부족한 게 제일 힘든 점이었다.
학생들은 요즘 아이들답지 않게 착해서 잘 따라와줘 고맙다.
김천에 살면서 최송설당 역으로 무대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보람되고 의미있고 감사하다.
글.공연사진> 김민성(데일리김천TV 대표&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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